2014.05.23
한 알의 밀알이 싹이 나고 (2000. 10. 29 주일설교)
한 알의 밀알이 싹이 나고
오늘의말씀/신34:1-8, 요12:23-33
34:1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 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34:2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34:3 남방과 종려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34: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34:5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34:6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34:7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이십 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34:8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애곡하는 기한이 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12: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12: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12:27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12: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12:29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우뢰가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저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12: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12:31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12: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12: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지난 주일에는 제직들께 저의 사임의 글을 띄웠습니다. 13년간의 사역을 정리하면서 감정을 솔직히 적어 보냈었습니다. 그랬더니 지난 한 주간은 참으로 모든 제직들이 울면서 보낸 한 주간이었습니다. 특히 여성제직들은 눈물이 많았습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여성제직들과 함께 깊어가는 가을의 금수계곡과 청암사를 다녀왔습니다. 만추의 풍경은 정말 시리도록 아프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그 좋은 풍경을 내내 쏟아지는 눈물로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족도 아니고 연인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눈물로 날을 지새고 울면서 날을 보내는 걸 보니 가슴이 메어집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분문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구약의 말씀은 모세가 느보산에서 생을 마치는 장면입니다. 신약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저도 이제 동녘교회 교우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기회가 세 번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우리 동녘교회 교우들에게 이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우선 신명기 34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 산에 올라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 산 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남방과 종려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 (신34:1-3)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 땅 모두를 친히 보여 주십니다. 그냥 쓰-윽 한 번에 보여주시는게 아닙니다. 아주 천천히 자세하게 다 보여 줍니다. 모세는 이제 이 보여주신 땅에 들어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모세에게 최후의 아낌 없는 배려는 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직접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모세가 일생을 쏟아 부어 헌신한 사역의 결과로서 들어가게 되는 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주 천천히 상세하게 약속의 땅을 마지막으로 다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그 땅은 약속의 땅이라고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34:4)
약속의 땅은 참 피눈물이 나는 땅입니다. 이스라엘이 생기고 부터 꿈꾸던 그런 땅입니다. 600년 전에 아브라함과 약속한 땅입니다.
“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창12:6-7)
이 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인데 600년 뒤에 이제 이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당시도 아니요,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아닙니다. 심지어는 모세도 아닙니다. 여호수아와 그의 백성들이 이 약속을 600년 후에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뤄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절차에 의해서 이뤄집니다. 우리는 이걸 믿어야 합니다. 이걸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최선이니까요.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혹한 선언을 합니다.
“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 (신34:4)
모세는 누구보다도 가나안 땅에 입성할 자격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출에굽 시킨 것이 누구입니까? 광야생활 40년 동안 그 수많은 추억과 사건을 겪으면서 이스라엘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게 누구입니까? 모세가 아니었으면 전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그 고대하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천청벽력 같은 소리입니까? 보세요 모세가 얼마나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했는가를.
“ 그 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였사오니 천지간에 무슨 신이 능히 주의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구하옵나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하되 “ (신3:23-25)
그러나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므리바에서 화가 나서 샘물을 쳤다고 해서입니다만 더 깊은 하나님의 뜻이 있은 것입니다. 더 깊은 하나님의 뜻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함께 살펴보십시다. 이 때 모세의 나이는 이미 120세입니다. 야곱은 147세, 요셉은 110세에 하나님께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죽을 평균 나이입니다.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 대대적인 전투를 벌이기에 모세는 이미 너무 지쳐 있습니다. 경륜은 있지만 힘이 없습니다.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 위해 왕성하고 정력적인 활동을 벌이기에 이미 그는 지쳐있었습니다. 그간의 전투로 인해 입은 상처가 너무 많고 컸습니다. 그리고 더 큰 이유는, 모세의 역할은 이미 끝이 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르면 모세의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에굽에서부터 가나안 입구까지가 모세가 할당받은 구역입니다. 이스라엘은 천신만고 끝에 이끌고 가나안 땅 입구까지 이끄는 것이 모세의 역할이고 임무였습니다. 그 다음은 또 그 다음 사람의 몫입니다. 그 다음은 또 하나님이 준비해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는 이미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선한 도구가 되는 하나님의 사역자로 쓰임 받는 자들의 철학이어야 합니다. 너무 아쉽고 너무 안타깝고 너무 슬픈 이야기입니다만, 이것이 하나님의 최선이기에 우리는 눈물로써 3500년 전의 그 아름다운 이야기의 장면을 믿음의 눈과 감동의 눈으로 읽고 있는 것입니다.
또 오늘 본문에 보면, 마무리 장면같이 장례 치르는 장면을 살짝 언급하고 있습니다.
“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애곡하는 기한이 맞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 (신34:8)
원래 이스라엘은 죽은 자를 위해 7일 동안 애도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모세를 위해서는 한 달을 애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의 인간적인 슬픔은 일주일이 좋습니다. 또 길어야 한 달입니다. 그것보다 슬픔이 길어지거나 많아져서는 안됩니다. 왜요? 가나안땅 진입의 역사가 있고, 또 새로 시작해야할 사역의 과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일주이면 족할 것입니다. 그 슬픔이 너무 크고 아쉬우면 한 달까지는 가능합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면 여호수아와 함께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비전을 세우며 요단강을 건너야합니다.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감격에 찬 가나안 땅을 밟아야 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과 여러분에게 바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제는 추스르고 가나안땅의 정복을 위해 나서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그 모세의 죽음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모세 죽음의 의미를 명심해야 합니다.
“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신34:5-6)
모세의 장사된 지점은 가나안 땅이 아닙니다. 바로 모압 땅입니다. 이스라엘이 내려다 보이는 모압땅입니다. 이 모압땅은 미완의 땅입니다. 그것도 한참 미완의 땅이 아니라 바로 코앞 미완의 땅입니다. 여기에 아주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5절,6절에 보면 ‘죽어’ ‘장사되었고'라는 말이 나옵니다. 아주 간단하게 적은 말이지만 엄청난 무게를 지니고 있는 말입니다. 모세가 죽어야 다음의 사역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장사되어야 다음의 역사가 이뤄집니다. 장사되지 않고 내가 모든 것을 이루겠다. 안 될 말입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가 지은 농사 내가 열매를 따 먹어야지. 이것은 믿음의 방식이 아닙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내가 죽어 썩어지는 것입니다. 봉사하고 칭찬의 열매, 수고하고 박수의 열매, 사랑하고 보답의 열매, 이런 걸 기대하면 이미 믿음이 아닙니다. 장사되어야 합니다. 밀알은 썩어야 합니다. 내가 썩고 내가 죽어야 생명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내가 썩지 않고 내가 죽지 않으면 싹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 사람 다 무덤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도 무덤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무덤이 없습니다. 아마 위대한 두 사람의 무덤이 남아 있었다면 거기에 얽매였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모세의 무덤을 돌아다 보느라고 가나안 진군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고 그 무덤에 연연하느라고 유대 땅을 떠나 세상으로 퍼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무덤은 없어져야 합니다. 대신에, 전 이스라엘의 가슴 가슴마다에, 모든 제자들의 가슴 가슴마다에 모세와 예수님이 심어져 있어야 합니다. 보이는 무덤과 기념비가 사라지면 가슴 가슴마다에 진짜 기념비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신약의 본문에서도 주님은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2:24)
예수님도 그의 생애에 현실적인 열매를 누리지는 못했습니다. 당신은 십자가에 처참하게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제자들의 배반을 뼈아프게 온 몸으로 경험해야 했습니다. 아무 것도 이룬 것 없이 그저 유대인의 왕이라고 조롱당하고 침 뱉음 당했습니다. 가야바 관저에서 고문까지 당합니다. 그리고 남은 것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돌아온 것도 받은 것도 없이 허망하게 십자가에서 소리를 지르며 최후를 마쳐야 했습니다. 이것이 사역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길입니다. 참 뼈아픈 이야기입니다.
오늘 신약의 본문 요한 복음 12장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려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고 나서 나눈 이야기입니다. 한 알의 밀 이야기는 이미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씀입니다. 이미 제자들을 떠날 때가 임박한 것을 아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죽어야 열매가 맺힙니다. 죽어야 새 생명이 삽니다. 예수님이 죽어서 제자들이 세상을 정복한 것입니다. 정말이지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는 제제들이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누가 크냐고 다투고... 변화산에서는 여기가 좋사오니 영원히 살자고 하고... 풍랑을 만나서는 허둥대고.. 병자하나 고쳐대지 못하고 예수님께 미루고... 십자가 지셔야 된다고 하니까 절대로 그렇게 허망하게 죽어서는 안된다고 만류하고.. 심지어는 적들에게 스승을 팔아 넘기고.. 저주하면서 세번이나 배반하고.. 이렇습니다. 이게 제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살아 생전에는 정말로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오합지졸에 세상을 정복하기는커녕 자기 한 몸 추스리기도 어려운 듯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제자들은 그렇게 나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다 고향으로 낙향을 하고 다 절망하고 다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능력에 찬 주님이 그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실 줄은 눈꼽만큼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것이지요. 충격이 너무 컸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절망도 40일이 채 되지 않아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서 그간의 일들이 전부 다시 새롭게 해석이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하신 사명의 말씀이 가슴 속에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고 나서는, 썩은 밀알 속에서 강한 움이 트고 굳은 땅을 힘차게 뚫고 세상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종래 세상을 정복하고 다 순교했습니다. 아마 예수님이 그렇게 빨리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77살이 되도록 제자들과 함께 유대땅에서 2천 년 전 천수를 누리다가 죽었다면 아마 이런 역사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기저귀를 차고 여전히 젖병을 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렇게 일찍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가슴에 못이 박힌 것입니다. 그렇게 아둔하고, 그렇게 주님의 속을 태우고, 그렇게 몰이해하고, 그렇게 모든 걸 주님께 미루고, 그렇게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지 못하고.. 이런 모든 것이 가슴에 못이 박힌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엄청났는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하는 주님께는 갚을 길이 없습니다. 이미 주님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평생 빚진 자가 되었습니다. 평생 빚진 자!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평생을 울면서 울면서 그 사랑을 갚으려고 순교의 자리까지 갔던 것입니다. 그 빚을 또 다른 사람에게 갚으려고 복음을 증거하다가 다 순교했습니다. 역시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 스승에 그 제자들! 참으로 위대한 제자들이었습니다. 참으로 멋있는 제자들이었습니다. 역시! 3년간의 예수님의 공생애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역시! 예수님의 사역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역시! 예수님입니다. 역시! 그 제자들입니다. 그 스승에 그 제자들입니다.
때문에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우 여러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을 받으십시오! 모든 길은 성령 충만에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만 짜내면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그저 공포와 절망감만 곱씹으며 떨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 모든 것이 되살아 납니다. 성령을 받으면 썩을 밀알을 자양분 삼아 강한 움을 틔우는 것입니다. .이때까지의 가르침이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다 살아납니다. 때문에 성령을 받으십시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더 충만히 성령을 받으십시오! 더 뜨겁게 기도하고 더 뜨겁게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주님의 능력을 덧입으십시오! 인간의 머리고 인간의 계산으로 나올수 없는 신기한 결과들이 쏟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정복하고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도 이제는 이 밀알을 자양분으로 삼아 뿌리를 내리고 움을 틔워 거목으로 자라십시오. 그리고 풍성한 열매를 맺고 세상을 정복하십시오. 이제는 가나안 땅으로 과감하게 진군하십시오. 풍성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은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이런 축복이 꼭 함께 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