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23
유언( 遺言) (2000. 11. 5 주일설교)

유언( 遺言)


오늘의 말씀/마28:16-20


"(16)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 하시니라 "



유대 탈무드에 나오는 아주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먼 곳에 살고 있던 한 슬기로운 유대인이 아들을 예루살렘에 있는 학교에 보냈습니다. 아들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동안에 아버지는 병에 걸려 도저히 아들을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유서를 썼습니다. 전 재산을 한 노예에게 양도하며, 단 그 중에서 아들이 바라는 것 하나만은 아들에게 주도록 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죽고 노예는 자기의 행운을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달려와 아버지의 죽음을 아들에게 고하고 유서를 보였습니다. 아들은 몹시 놀라고 슬퍼했습니다. 상을 치르고 나자 아들은 어찌하면 좋을까 진지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랍비댁을 찾아가 형편을 설명하고 "아버지는 어째서 내게 재산을 남기지 않으셨을까요? 아버지를 화나시게 하는 따위의 일을 나는 한 번도 저지른 적이 없었는데"하며 불평했습니다. 랍비는 "자네 아버님과 같은 만큼 자네도 머리를 슬기롭게 쓰게. 아버님이 무엇을 바라고 있었는가를 생각한다면 그대에게 훌륭한 유산을 남기셨다는 것을 알 것이네" 했습니다. 랍비는 그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우선 자기가 죽었을 때 아들이 없으므로 노예가 재산을 가지고 도망치거나 재산을 써버리거나, 당신이 죽은 일마저 아들에게 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전 재산을 노예에게 주었네. 재산을 전부 주면 노예는 기뻐서 급히 아들을 만나러 가게 되고 재산도 소중히 간직해 두겠지...... 그렇게 생각하셨던 것이네." 아들은 "그것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랍비는 "젊은이는 아무래도 지혜가 모자라는구먼. 노예의 재산은 모두 주인에게 속해 있음을 모르는가? 그대의 아버님은 그대에게 하나만 준다고 하시지 아니하셨는가? 그대는 노예를 고르면 되네. 이것은 아버님의 매우 애정깊은 슬기로운 생각이 아니신가?" 했습니다. 젊은이는 겨우 깨닫고 랍비가 말한 대로 훗날 그 노예를 택하여 전재산을 찾게 되었으며, 노예는 해방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하나만 잘 선택하면 된다는 교훈입니다. 유대인의 지혜가 배어 있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주님도 이 세상을 마지막 떠나시면서 제자들에게 유언장을 남기셨습니다. 그런데 그 유언장이 좀 특이합니다. 그 유언장에는 병고치는 기적을 일으키는 비법, 사람들을 잘 가르쳐 500명씩 모이게 하는 명강의술, 하나님과 직통할 수 있는 기도법, 재산을 모으고 기술, 세계를 다스리는 통치철학, 평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법, 세상을 사는 101가지 지혜, 성공하는 77가지 습관들, 뭐 그 어느 것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를 남겼습니다. 한결같이 한 가지 내용입니다. 바로 ‘제자 삼고 증인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일한 유언입니다. 이걸 아셔야합니다. 아주 어리석고 아주 별 것 없는 것 같아도 여기에 주님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이 한 가지만 선택하면 다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행복도 성공도 다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것 같지만 가장 현명한 유언입니다. 까닭에 금싸라기 같고 주옥같은 그 주님의 유언을 한 번 경청해 보십시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때문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부탁하는 장면입니다. 사도행전 1:8과 함께 우리는 이것을 '대사명'이라고 말합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예수님의 유언입니다. 그 내용은 “제자 삼아 세례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입니다. ”내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명을 완수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보장책은 ‘끝까지 함께한다’는 것입니다. 그 약속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분의 약속입니다. 함께 함은 세상 끝날까지입니다. 임마누엘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오늘 마태복음 28장의 대사명과 사도행전 1장의 대사명은 모두 능력과 권세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2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1)

권세와 권능이 이 대사명의 유언에 따라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일도 권세가 필요합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는 것도 권능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은 능력과 권세로써 세상 끝날까지 제자들과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주실 수 있는 최대의 선물입니다. 바로 임마누엘의 약속입니다. 원래 임마누엘은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예수님을 가리킨 말이었습니다(마1:23) 그런데 돌아가실 때 이 임마누엘이 다시 약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보세요, 여기에 신비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셔서 공생애 기간 동안 함께 계셔도 임마누엘이요, 승천하시고 없어도 임마누엘입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은 제자들과 몸으로 부대끼고 함께 호흡하면서 임마누엘이요, 이제 승천하시고 나서는 성령으로 세상 끝날 까지 임마누엘입니다. 사실 살아 생전에 임마누엘은 그 가치를 몰랐던 제자들입니다. 또 능력도 권세도 행사할 수 없는 무기력한 임마누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승천하시고 나서 평생 동안의 임마누엘은 그야말로 능력과 권세의 임마누엘이었습니다. 제자삼고 증인 삼는 임마누엘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구절은 바로 ‘너희는 가서’(19절)라는 말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가야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내 안에 머물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복조리 신앙에 머물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받기만 하는 신앙에 머물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예수님 얼굴만 쳐다보는 신앙에 머물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내 안에 갇혀 지내지 않고 ‘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가서‘입니다. 가되 이제는 유대인의 경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이제는 이방인에게로 모든 족속에게로 가야 합니다. 이제는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가야 합니다.

그 다음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19절)했습니다. 세례를 주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주는게 아닙니다. 내 세례, 내 교인, 내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나 대리자일 뿐입니다. 도구자일 뿐입니다. 쓰임 받는 사역자일 뿐입니다. 전달자는 전달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자신의 뜻을 가미할 수 없습니다. ‘복음증거, 사랑의 실천‘ 이제는 이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생전에 그렇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지만 이제는 그 모든 가르침과 훈련을 집약해서 한 마디로 농축한 말씀을 하십니다. 유언은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시급하며 가장 오래 간직해야 할 말씀입니다. 유언은 꼭 받들고 지켜야할 말씀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서로 주님의 대사명을 실천하면서 만납시다. 임마누엘로 만납시다. 하나님 나라에서 결산하면서 해후하십시다. 이 대사명의 유언을 꼭 지켜 자랑스런 주님의 제자들이 되십시오! 이제는 하늘을 쳐다보지 말고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을 열심히 쳐다보십시오. 모든 족속을 쳐다보십시오. 생전에 하지 못했던 것을 실천하여 주님의 한을 풀어 드리십시오.

“볼지어다 !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 하시니라 " 이 말씀처럼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세상 끝날 까지 능력과 권세로 임마누엘 하시기 바랍니다. 이로 인한 승리가 여러분의 일생에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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