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23
마른 땅으로 행하여! (2000. 11. 19 친구교회 부임예배 설교)

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렇게 감격적인 예배를 드리게 하신 주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자녀들인 저희가 주님의 인도를 따라 이 친구교회에서 새로운 만남을 갖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할 수 있게 주시니 이 또한 주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오늘은 또한 추수감사절입니다. 부족함과 결핍 속에서만 지내던 저희들이 주께서 주신 복을 세어 보기를 원합니다. 주님, 이 한 예배를 통하여, 주님이 주셔야할 복보다 이미 주님이 주신 엄청난 축복에 감격해 하는 예배가 되게 하소서.
아울러 절망과 무기력, 불안과 죄책에 시달리는 당신의 아들딸들에게는 이 한 예배를 통하여 위로와 희망, 생명과 용기를 얻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그리스도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마른 땅으로 행하여!


오늘의 말씀/수3:14-17

"(14)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하니라 (15)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사역을 같이 하시는 분 가운데 한국인 아가씨가 한 분 있는데, 킴 윅스라는 맹인 아가씨입니다. 한국전쟁 때 실명을 했고 고아원에서 자랐는데 어떤 미군 중사의 도움으로 미국에 가서 인디아나 주립대학에서 공부하고 또 오스트리아에서 성악 수업을 하여 훌륭한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그녀가 예수를 믿고 빌리그래함 목사님과 함께 집회를 할 때마다 찬양을 하며 간증을 합니다. 그런 그녀의 고백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장님인 나를 인도할 때, 저 100미터 전방에 뭐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앞에 물이 있으니 건너뛰라고 말하고 층계가 있으니 발을 올려놓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나는 그대로 따라 합니다. 나를 인도하시는 분을 내가 믿고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나를 인도하시는 분이 성실 할 때 나는 내가 가고자하는 목적지에 꼭 도착을 합니다. 하나님이 저를 인도하시는 방법도 이와 같았습니다. 저는 10년 후를 알지 못합니다. 20년 후도 알지 못합니다. 또 알고자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보이시는 그 하나님께 믿음으로 순종하고 나니까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순종하면 지금도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참 멋있는 간증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저 열심히 하나님이 지금 내게 지시하시는 대로 신뢰를 가지고 순종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은 그의 방법과 절차에 따라 그의 시기에 이뤄질 것입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믿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은 이 사실을 가장 잘 증명해 주는 사건입니다.

모세는 느보산에서 120살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출애굽의 사역은 40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고 이제는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세는 여기에서 생을 마감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슬픔에 휩싸였습니다. 절대적인 지도자 모세가 사라진 것입니다. 모세와 함께라야 이뤄질 것 같던 가나안 땅의 꿈은 이제 모세의 죽음과 함께 불투명해 졌습니다. 이런 막막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모세의 장례식을 치뤘습니다. 모압 평지에서 30일 동안 애곡하며 모세의 장례식을 치뤘습니다. 이 30일 기간 동안 이스라엘의 행진은 정지되었습니다. 가장 바쁘고 분주해야할 시기에 이스라엘은 30일 동안을 허비하며 슬픔에 휩싸인 것입니다. 가장 에너지를 많이 모아야 할 때인데 가장 에너지가 분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치밀하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가나안땅 진입 전투의 전략과 전술을 짜야할 시기에 장례식이나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30일이 지나자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다시 받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앞세우고 이스라엘에게 진군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명령을 받은 이스라엘은 모든 슬픔을 털고 일어나 다시 전열을 정비합니다. 이제 모압 평지 싯딤을 떠나 요단으로 향합니다. 제사장들이 법궤를 멥니다. 이것은 정상적인 행군 대열이 됨을 뜻합니다. 행군할 때의 이스라엘의 대열은 그 진행 순서가 엄격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이제는 짧게는 지난 30일 동안의 장례식을 끝내고 모세를 영영 떠나보냈습니다. 또 길게는 지난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을 청산하고 약속의 땅으로 진군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순간, 대전환의 시기에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명령합니다.

"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 (수3:5)

준비할 것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지만,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제일 먼저 성결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방식인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성결입니다. 성결이 기적을 일으킵니다. 가령 예를 들자면, 그릇에 빗물이 고이게 하려면 그릇을 바로 놓아야 합니다. 그릇이 엎어져 있으면 폭우가 쏟아지고 홍수가 나도 그릇에 물이 고이지 않습니다.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기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성결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축복을 받을 준비, 주님의 개입을 초청할 준비, 주님의 기적에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일한 조건입니다. 믿음은 그런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그 어떤 엄청난 노력이나 전략과 전술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는 여호와 앞에 성결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성결은 순전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원칙을 액면 그대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보세요! 이스라엘이 이 기적의 순간을 얼마나 목마르게 기다려 왔는지. 짧게는 40년이요, 길게는 600년입니다. 짧게는 모세의 출애굽 이후 40년이지만, 길게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큰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는 약속이 600년 만에 이뤄지는 순간인 것입니다. 600년의 약속이 이뤄지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이제 그 장엄한 순간에 우리는 서 있는 것입니다. 이걸 믿음의 눈으로 그려보세요.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성취될 주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믿음의 눈으로 그려보세요. 그리고 그 약속을 받기 전에 먼저 성결하십시오! 그 다음 우리가 주목할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5절)

그냥 또 다른 내일이 아닙니다. 어제의 반복된 내일이 아닙니다. 내일은 아주 특별한 날입니다. 아무나 이 특별한 날을 맞이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황홍렬 목사님, 오재현 목사님을 거쳐 제가 여러분과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영광을 얻게 되었으니 말이지요.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것은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인물들이 이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다윗도 그렇게 원하고 열망하던 성정건축을 자신의 손으로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솔로몬이 그 권리를 부여받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이 평생의 소원이던 모세는 결국 그 가나안 땅을 지척에 두고 느보산에서 최후를 마쳐야 했습니다. 인간의 의지나 바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도 그렇습니다. 출애굽 당시의 1세대들은 다 광야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출애굽 세대는 다 죽고 광야 세대만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인력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와 축복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 여러분과 저는 특별히 축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호와께서 ‘내일’ 기사를 행하시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그 기사에 동참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이 말씀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기대감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실 기적의 내일을 기대하십시오. 기대하는 자에게 감격이 있습니다. 기대하지 않는 자에게는 모든 기적이 그저 우연일 뿐입니다. 그러나 기대하고 열망하고 주시하는 자에게 기적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정확한 하나님의 역사일 뿐입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저 하나님의 베푸신 수많은 기적과 선물을 그저 우연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니 감사가 있을 수 없지요.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손길마다 아주 섬세한 반응을 합니다. 아주 예민한 바로미터처럼 하나님의 역사에 섬세하게 반응합니다. 아주 조그만 하나님의 움직임에도 분명하게 반응합니다. 때문에 아주 조그만 일에도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아주 작은 주님의 경고의 사인에도 각성을 합니다. 이것이 멋있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성능 좋은 지진계는 작은 미동에도 바로 반응합니다. 그러나 성능이 썩 좋지 않은 지진계는 진도13의 지진이 일어나야 그제야 반응합니다. 작은 주님의 경고와 도전에도 각성하세요. 작은 주님의 역사에도 감사하고 찬양하세요. 이것이 능력 있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원자폭탄 같은 하나님의 축복이 안 쏟아진다고 불평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의 기적과 선물에는 그저 무덤덤하고 우연으로 돌려버립니다.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5절)

이 말씀의 기대를 늘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내일 우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여호와께서 내일 나의 일 속에 기사를 행하시리라! 이런 축복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오늘 말씀의 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시는데 전제 조건을 또 하나 달아둡니다.

"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상거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수3:4)

법궤와 이스라엘 백성 본 대와의 거리는 1킬로미터 정도 됩니다. 이것도 법입니다. 규칙입니다. 민수기 2장에 보면 멈추어 있을 때의 이스라엘의 진 배치와 행진 할 때의 이스라엘 진영의 배치에 대해 상세하게 규정해 놓고 있습니다. 멈추어 있을 때는 성막이 진 중앙에 배치됩니다. 그러나 행진할 때에는 법궤가 제일 앞에 섭니다. 그리고 법궤와의 사이는 일정한 거리가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막 부품과 기구들은 진 중간 중간에 배치됩니다. 여기에 아주 깊은 뜻이 숨어 있습니다. 공격할 때에는 가장 중요한 이스라엘의 상징인 법궤가 맨 앞에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방식입니다. 지면 뺏기는 것입니다. 법궤가 빼앗기면 이스라엘의 중심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배수진의 전법이기도 하고 믿고 나가는 믿음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것을 잘 못 시험하여 패배도 당하고 법궤도 빼앗긴 선례가 있기도 합니다.

어쨌든 이제 공격 개시 명령을 내리면서 하나님의 질서를 명령합니다. ‘가까이 하지는 말라‘ 거룩성을 유지하면, 하나님의 믿음의 질서와 원칙을 지키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 원칙을 지킬 때, 우리의 인생길이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오리무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원칙을 지켜야 우리 행할 길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누구 보다 잘 알고 있는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일주일면 능히 들어갈 수 있는 가나안 땅 길을 40년을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믿음 없는 정탐꾼들의 말을 더 신뢰한 결과입니다. 믿음의 원칙, 말씀의 법칙을 지키면 우리 인생길이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가장 더디고 굽어 도는 것 같아 보여도 이 길이 가장 지름길입니다.

그런데 이 길은 어떤 길입니까? 바로 전혀 새로운 창조적인 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결코 지나보지 않은 새로운 개척의 길을 알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을 주님이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는 가보지 못한 길이기에 잘 모릅니다. 얼마나 험한 길인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어떤 코스가 지름길인지...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언약궤가 앞장서고 여호와 하나님이 길을 개척해 주시고 기적을 일으켜 주시기에 우리는 순종하며 찬송하며 뒤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 한 대로 그대로 다 따랐습니다. 그대로 다 지켰습니다. 그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했습니다. 지도자 여호수아를 모세보다 더 따르고 믿었습니다. 그 결과 600년의 약속이 성취되는 감격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600년의 약속이 성취되는 순간이 또 참으로 극적입니다.

“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15-16절)

요단강 도하작전 때에 요단강물은 최고조로 불어 있을 때입니다. 모맥 거두는 시기 4,5월은 봄이라 헬몬산의 눈이 많이 녹고 또 봄비가 내려 요단강물은 만수위가 됩니다. 도하 작전이 가장 불리한 시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불리한 조건에서 이뤄집니다.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에굽 군대입니다. 가장 불리한 양동 작전에 걸린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벳세다 들녁에서도 그랬습니다. 굶주린 군중은 오천 명이고 먹을 것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입니다. 이런 최악의 조건에서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제사장들은 무모하게 강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요단강을 포장도로로 만든 다음에 제사장들이 들어 간 게 아닙니다. 아직도 갈라지지 않은 요단강을, 아직도 만수위로 흐르는 물살 센 요단강을 그저 벱궤를 메고 들어 선 것입니다. 오늘 분문에 보니까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15절)라고 했습니다. 발이 물에 먼저 잠겨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 정도의 믿음은 있어야 합니다. 전적인 신뢰의 표시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완벽하게 장치를 해놓으면 제가 안전하게 건너가겠습니다. 이럽니다. 이건 믿음이 아닙니다. 계산이고 거래입니다. 믿음은 담보대출이 아니라 신용대출어이야 합니다. 때문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어야 합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어야 합니다. 이 말씀 꼭 기억하실 일입니다. 믿음으로 행하십시오. 그렇게 믿고 그렇게 행하십시오. 하나님이 다 세세하게 일러주신 일입니다. 일러주신 대로, 말씀하신 대로 믿고 가는 것입니다. 물살이 갈라지기 전에 먼저 믿음으로 뛰어 드십시오. 도전하고 실행하십시오. 그대로 될 것입니다. 그랬더니 엄청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 (17절)

이 말씀은 아주 감격스럽습니다. 마른 땅에 굳게 서 있는 제사장들을 보십시오. 저는 이 장면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놓고 기도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른 땅으로 행하는 멋있는 상상을 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길은 고난의 길만이 아닙니다. 멋지고 신나는 길입니다. 축제와 찬양의 길입니다. “ 마른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풍랑 치는 험한 길을 목숨을 걸고 건너는 고난의 행군이 아닙니다. 마른 땅으로 당당하게 걸어서 찬양하며 가나안 땅을 들어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백성들에게 일어 나는 특별한 기적의 역사입니다. 이 사실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인생의 풍랑을 만났을 때, 여러분 인생의 넘을 수 없는 시련의 강을 만났을 때, 마른 땅으로 건너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가는 길이 그것을 가능케 할 것입니다. 생의 위기 앞에서 절망의 강을 두고 있다면 믿음의 원칙을 고수하십시오.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실천하십시오. 그리고 강하게 도전하며 실행하십시오. 그러면 위기의 강은 마른땅 순한 길이 될 것이며, 오히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될 것입니다. 이런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는 감사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문)
주님, 이제는 말씀의 법궤를 앞세우며 넘쳐나는 요단강을 건너고자 합니다. 이미 주님께서 약속하신 땅이요, 이미 주님께서 축복하신 땅이기에 믿음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아직 넘쳐나는 요단강이지만 당신의 아들딸들이, 믿음으로 나아갈 때 마른땅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믿음의 자녀들의 앞길이 얼마나 감격스런 찬양의 길인지를 저희들로 하여금 체험하게 하여 주소서. 예수그리스고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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