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09
너희 안에 기쁨이 충만케 하라 (2001. 2. 4 주일설교)

 너희 안에 기쁨이 충만케 하라

요17:13

“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에덴은 기쁨, 환희, 아름다움이란 뜻이 있습니다. 바로 낙원(Paradise)입니다. 원래는 교회와 가정과 일터에 자주 쓰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말이 술집이나 레스토랑의 간판으로만 쓰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참으로 소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에덴의 회복입니다. 우리가 왜 예수를 믿나요? 바로 에덴의 회복입니다.

인간은 범죄 이후 낙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부조화, 자신과의 부조화, 이웃과의 부조화, 자연과의 부조화 이런 4중적 부조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그러지고 깨어진 삶에서 조화롭고 행복하고 기쁜 생활로의 회복이 바로 복음이요, 우리가 예수 믿는 목적입니다. 에덴 동산, 천국을 잃어버리고 슬픔이 왔습니다. 고된 노동, 에덴 동산의 추방은 슬픔의 상징입니다. 에덴 동산을 회복하니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복음 복음 하는 데 복음은 헬라어 ‘뉴앙겔리온’을 번역한 것입니다. 그 뜻은 기쁜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에덴을 회복하는 데 힘겨워 하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낸 것입니다. 에덴의 회복을 도우시러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아주 직접적인 방법, 아주 쉬운 방법, 아주 적극적인 방법을 알려 주러 오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돈이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승진하는 것도 아니고, 문제가 덜컹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무엇이 나를 기쁘게 해 준다는 말일까요? 복음이란 기쁜 소식인데 복음을 만나면 우선 존재의 기쁨이 충만해 집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목적입니다.

예수를 믿기는 믿는데 에덴이 없고 복음이 안 일어난다 .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인데 그렇게 기쁜 소식을 안고도 기쁨이 없다면 그거 복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기쁜 소식을 접하고 잇습니까? 기쁜 소식을 누리고 있습니까? 기쁜 소식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때때로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과연 이렇게 엄청난 기쁜 소식을 안고서 정말 내적 기쁨을 느끼고 있는가?

오늘 본문은 주님이 세상을 떠나시기 얼마 남지 않음을 아시고 마지막 제자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내용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제자들로 하여금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게 해 달라는 중보 기도입니다. 이거 아주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 핍박과 고난이 닥칠 것입니다. 그러면 제일 먼저 저들 속에 두려움과 고통과 슬픔이 밀려 올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예견하고 계셨기에 기쁨이 충만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찰랑 찰랑 하는 바닥 기쁨이 아닙니다. 충만한 기쁨을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자기 안에 기쁨이 가득해 지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 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기쁘고 행복한 생활입니다. 그런데 이런 내적 기쁨의 증거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생활의 변화, 평화, 안정, 사랑, 목적, 의미.. 이런 것들입니다. 모두 자기 안에 기쁨이 가득해 질 때 가능한 것들입니다.

신앙생활 그러면 바르게 사는 것을 의미하는 데, 바르게살기 위해 괴로움으로 한다. 이를 악물고 한다 이거 신앙이 아닙니다. 고난과 순교도 그렇습니다. 악으로 깡으로 순교하고 고난 감수하는 것 아닙니다. 그러면 조직 폭력배들 사이에 순교자가 가장 많이 나와야지, 양처럼 순하고 약한 신앙인들 사이에 어떻게 그렇게 수많은 순교자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순교자들이 악으로 깡으로 해서는 순교 못합니다. 내적 평화와 기쁨이 두려움을 넘어서야 순교를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쿼바디스에 보면 그렇습니다. 마지막 순교 장면은 찬송입니다.
기쁨으로 바르게 살고 기쁨으로 순교하고 기쁨으로 고난 감수하고 기쁨으로 손해 봅니다.

그래서 원망과 시비가 없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원망이 있으면 이거 신앙 생활이 아닙니다. 신앙 생활은 전혀 나의 자발적인 행동입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 봉사를 하면서 남들더러 이렇게 저렇게 좀 해달라고 많이 부탁합니다.

그렇게 속상해 하지 말고 그 봉사를 중단하십시오. 내적 기쁨이 사라지고 원망과 시비만 있는 봉사는 중단하고 다시 심호흡해 봐야 합니다. 주님께 기쁨의 은총의 에너지를 다시 공급 받을 때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혹 마음속에서 원망과 시비가 생기면 나의 영적 용량의 한계가 왔다 생각하시고 용량을 더 충전시켜 늘린 다음에 일하십시오.

모터가 있는데 면도기 모터로 청소기를 돌릴 수 있습니까? 청소기 모터로 자동차를 굴릴 수 있습니까? 다 용량이 넉넉해야 합니다. 기쁨이 사라진 신앙 생활을 해라! 이것은 저주입니다. 기쁨과 감격이 사라진 채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천형에 가깝습니다.
어떤 분은 신앙생활 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틀렸습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신앙 생활하기는 힘든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입니다.
내적 기쁨이 충만해야 가능한 것이 바로 신앙 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은 삼단폭포입니다.

삼단 폭포 잘 아시지요? 먼저 제일 위의 폭포의 물이 풍성하게 흘러 넘치면 그 아래 폭포로 풍성하게 물이 떨어집니다. 비단결 같고 치렁치렁한 머릿결 같은 폭포수가 삼단으로 흘러 내리는 것입니다. 삼단 폭포는 먼저 제일 윗 폭포의 물이 변수입니다. 제일 잇 폭포의 물이 풍성해야, 그 아래 폭포가 풍성해 집니다.

삼단 폭포의 제일 위쪽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것이 풍성하게 흘려 내려 내 존재에 넘쳐야 합니다. 그래야 그 다음에 이웃과 사회라는 아래 폭포로 물을 풍성하게 흘려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물이 고갈 된 사람들이 억지로 자신의 물을 퍼내서 아래로 흘려 보내는 것을 봅니다. 마치 가뭄의 폭포 같은데도 말이지요. 너무 힘겨워 보입니다. 내 폭포의 물이 넘치면 그냥 가만히 있어도 아래로 저절로 흘러 내려갑니다. 이것이 생명 넘치는 신앙, 생명 넘치는 교회입니다.

교회 봉사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세계를 구제하기 전에 여러분의 폭포에 하나님의 은총의 물이 가득 흘러 넘치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존재에 먼저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넘치도록 하십시오. 그 다음에는 다 될 것입니다. 기독교는 강한 윤리적 실천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윤리적인 종교는 아닙니다. 감격과 기쁨과 은총의 종교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기쁨이 빠진 실천을 우리는 율법이라 부릅니다.

무엇이든지 기쁨과 즐거움, 자발성이 사라지면 거기서 그만 해야 합니다. 그것은 율법입니다. 의무감이요,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도 도움이 안되고 자기 자신에게도 도움이 안됩니다.

내적 기쁨이 바깥으로 나타나면 사랑이 됩니다. 헌금도 기쁜 자발성으로, 봉사도 기쁜 자발성에 기초해서! 사랑의 실천도 기쁜 마음으로! 신앙생활은 여기에 목적이 있습니다. 방법과 절차도 그래야 하고 목적도 그래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좀 과격하지만, 무명 헌금을 합니다. 다 기쁜 마음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들을 사랑하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주여 저희에게 내적 기쁨을 주시옵소서. 주님의 기쁨을 주옵소서.
저는 저희 교회의 요즈음 복음증거를 열심히 하는 분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얼마나 좋은 세계를 보았으면 저렇게 자랑하고 싶을까? 맞습니다. 기쁨은 전염성이 강합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합니다. 입을 다물고 있지를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내 안에 기쁨이 넘친다는 증거입니다.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이 예수를 만났습니다. 종래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아래 마을로 뛰어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외치며 다녔습니다. 불과 반나절의 만남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기쁨의 물결이 존재를 흔든 것입니다.

삭개오도 그렇습니다. 뽕나무에 매달려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렇게 만난 예수가 자신의 삶을 뿌리 채 흔들었습니다. 기쁨의 결과는 생활의 혁명입니다. 재산의 절반을 팔았습니다. 토색한 것은 네 배를 갚았습니다. 재산은 다 거덜났지만 기쁨은 충만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인간은 본래의 위치를 찾을 때 기쁨을 느낍니다. 그것은 바로 천국을 회복한 것입니다.

년초에 한 해의 성경구절 정하라고 하니까 살전5:16-18이 제일 많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 구절입니다. 이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첫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명령입니다. 내적 기쁨이 사라지지 않게 하는 일이 신앙에서 최우선입니다. 수가성 여인 같고 삭개오 같은 기쁨이 한해에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너희 안에 기쁨이 충만케 하라!

우리 주님이 제자들을 위해 마지막 기도를 합니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13절)

그 주님이 여러분을 향해 이 시간 또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 내 기쁨이 그대 안에 충만해 지기를! ”

잔잔한 강 같든지, 폭풍치는 모습이든지, 질풍 노도로 오든지 어떤 형태의 기쁨으로 오든지 여러분의 존재 안에 내적 기쁨이 충만해 지시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복음의 충격 앞에 다 서시기 바랍니다. 다른 모든 것은 잊어버리십시오. 이런 내적 기쁨이 충만해 지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올 한해에는 여러분의 신앙에 에덴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올 한해는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에 하루 하루의 생활에 에덴을 회복하시고 복음의 기쁨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여러분의 존재가, 가정이 일터가 그리고 만나는 인간관계가 그리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유언처럼 우리를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중보 기도한 그 기도가 여러분에게 그대로 이뤄지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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