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09
밖으로 향한 화살표 (2001. 2. 11 주일설교)

                               밖으로 향한 화살표

[고후5:14-19]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19)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



종교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종교의 목적은 물론 내적 평화와 안식입니다. 죽음의 해결, 존재문제의 해결일 것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하자는 것일 까요? 다 신선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는 것이 목표일까요? 절대 아닙니다.

하기야 요즈음 도를 닦는 다고 모두 산속으로 들어가고 속세를 떠납니다. 속세를 떠나는 것이 도의 목표라면 하나님이 이 속세에 우리를 보낼 까닭이 없지요. 속세를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은 애시당초 우리를 이 속세에 보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냥 하늘 나라에 편히 뒹굴 뒹굴 놀도록 놓아 두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유가 있어서 우리를 이 속세에 보냈는데.. 한 평생 동안 속세를 떠나 살다가 그냥 고운 몸으로 왔다 하나님이 칭찬하겠습니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실 것입니다.

이런 이론에 현혼되지 마십시오. 그것은 올바른 종교가 아닙니다. 산위의 변화산은 산 아래 마을로 가기 위한 충전의 기간이요, 예비의 기간일 수는 있어도 텐트를 치고 머물러야 할 자리는 아닌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 그리스도인의 득도의 목표는 봉사와 섬김에 있습니다. 신선이 되면 이 세상 속으로 내려와서 이웃과 부대끼고 역사와 부대끼고 그래야 합니다. 이것이 제대로 된 신선입니다. 기도원파도 그렇습니다. 제대로 된 기도원파는 세상 속에서 가정 속에서 일터 속에서 냄새 나는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그들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꽂을 피우고 시궁창을 변화시켜 공원으로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제대로된 영성이요, 제대로 된 성령 충만입니다.

그러면 교회의 존재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교회의 존재 목적은 세상을 섬기는 데 있습니다. 신앙의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이웃을 살리고 섬기는데 있습니다.

마치 병원의 존재 이유가 퇴원시키는데 있는 것과 같습니다. 병원의 존재 이유는 병을 고치는 일에 있습니다.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은 병원에 있을 이유가 없으니 퇴원하는 것입니다. 고로 병원의 존재 이유는 사람들을 병고쳐 퇴원시키는 데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최종목적지는 이웃이요, 세상입니다. 믿음의 최종 목적은 사랑의 실천이요, 섬김입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도 세상으로의 파송입니다. 세상을 향해 빛으로 소금으로 등대로 사는 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분명히 해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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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도 이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 (15-16절)

예수 그리스도가 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까? 다시는 나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기 위해서 라고 분명히 말씀 하셨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으면 누구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기에 불이 붙어서 하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하고 찬송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실천입니다.

자유는 섬김을 위해 준 것입니다. 생명 살림은 이웃생명을 위한 119대원이 되라고 한 것입니다. 모이는 교회는 흩어지는 교회를 위한 것입니다. 기쁨은 사랑의 실천을 위해 준 것이고, 양육은 봉사를 위해서 베풀어 진 것입니다. 까닭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대 사명 앞에 서 있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네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마28:19-20)

여기에서 면제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가서!’라고 했습니다 파송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복음증거, 사랑의 실천, 섬김의 봉사, 이런 파송의 명령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받았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 (17-18절)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은 어떤 일을 합니까?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은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받은 것입니다. 까닭에 화목하게 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화목하게 하는 것은 멧신저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고, 이웃을 섬기는 일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은 모두 이 직책을 받은 것입니다. 목사든, 장로든, 집사든, 평신도든 다 받은 것입니다.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안 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 받았습니다.

또 우리가 여기서 명심할 성경의 원칙은 모든 봉사의 직책은 주님이 시키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시키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뽐냄도 잘남도 뻐김도 우월도 있을 수 없습니다.

노예나 머슴에게 직책이 있습니까? 그냥 머슴입니다. 상머슴은 그냥 열심히 일하는 머슴일 뿐입니다. 노예는 늙은 노예나 젊은 노예나 그냥 노예일 뿐입니다. 목사노예, 장로노예, 권사노예, 집사노예, 평신도 노예 뭐가 다릅니까? 다 그냥 노예입니다. 시키는 일을 죽도록 하는 노예일 뿐입니다. 시킨 일이 다를 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그냥 노예입니다. 신분은 다 같습니다. 지위도 다 같습니다. 다만 시킨 일을 충성스럽게 할뿐입니다. 그런데 노예는 노예인데 강제적인 전쟁 포로 노예가 아니라 사랑의 포로가 된 자발적인 노예입니다.

까닭에 교회에서 받은 직책은 그저 섬기는 직책일 뿐입니다. 큰 섬김 작은 섬김이 있을 수 잇습니다. 그것은 더 내려가고 더 낮아지고 더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권위는 어디에서 나옵니까? 카리스마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모범과 섬김과 종의 권위입니다. 이것을 잊어 서는 안될 것입니다.

사역使役, 누가 시킨 것입니까? 주님이 시킨 것입니다. 무엇을 시킨 것입니까? 대사명의 일을 시켰습니다. 누구에게 시킨 것입니까?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시켰습니다.

사역자는 헬라어로 디아코노스입니다. 이 말에 가장 가까운 것은 집사입니다. 집사들은 이제 섬기는 직책에 가장 가까이에 있습니다. 영혼을 섬기고 육체의 필요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봉사를 ‘디아코니아‘라고 합니다. 모두가 사역자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역자입니다.

막쪄낸 찐빵의 김만제씨를 보니까 세례를 받지 않아도 몇 십만부의 책을 팔면서 사역하더라고요. 교회에 나온지 사흘이 되어도 사역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교회에 들어 온지 몇 십년이 되었는데도 퇴원을 안하고 있는 장기 환자들, 평생 환자들이 참 많습니다. 봉사한번 못하고, 사역한 번 감당하지 못하고 복음증거 한 번 못하고, 양육한 번 못하는 그런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생명 출산의 기쁨, 영적 양육의 즐거움, 사랑의 환희, 섬김의 감동을 맛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이 기쁨과 감동을 맛보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바쁘다고 말합니다. 물론 바쁠 것입니다. 할 일이 많겠지요,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해야 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으니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그러나 이 세상에서 제일 바쁜 사람은 아마 미국의 대통령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지미 카터의 “살아있는 신앙”(Living Faith)이라는 책을 읽어보니까 카터는 그 바쁜 와중에도 기도를 합니다. 대통령 집무실 바로 옆에 기도실을 만들었습니다. 바쁘기 때문에 기도하고 중요한 일을 하기에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을 내어 죠지아주 고향으로 가서 침례교회의 주일학교 교사를 합니다. 물론 어린이부는 아닙니다. 성인 주일학교이지요.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인권을 앞세운 정책을 실행합니다. 당시에는 재선에 실패한 무능한 대통령이지만 그의 진리의 말씀에 입각한 정치 생활은 오늘날 가장 존경받고 왕성한 활동을 하는 전직 대통령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바쁜 와중에 해비타트 운동에 참가를 합니다. 직접 망치를 들고 못을 박고 벽돌을 찍으며 일정 기간을 봉사합니다.

최근에는 그가 가장 사랑하고 섬기던 침례 교단과 당분간 결별을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아주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봅니다. 침례 교단이 너무 보수화되어 남녀 평등과 거리가 멀게 나가고, 미국의 이익을 너무 앞세워 인류 보편의 가치를 희생시키는 데 일조하고, 가난한자를 외면하기에 결별을 선언한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그리스도인이 나와야 합니다.

신학교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올바른 그리스도인, 제대로 사는 그리스도인이 필요합니다. 직분은 단지 통로일 뿐입니다. 가장 낮은 곳의 봉사를 서로 하겠다고 다투는 교회는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거룩한 일은 사소한 것입니다. 절대 큰 것이 아닙니다. 생각과 자세와 정신에 거룩이 있습니다. 작고 큰일, 엄청난 일은 다 정신과 자세에 있습니다. 어떤 정신으로, 어떤 자세로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수녀들 중에는 평생 동안 삽화를 그리고 수사들 중에는 평생을 그냥 성구 만드는 대패질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를 목수라 부르지 않고 수도자라 부릅니다. 그의 일을 거룩한 사역이라 부릅니다. 똑 같은 일을 해도 어떤 정신으로 어떤 자세로 어떤 고백으로 하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 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인생은 잠깐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마지막 날에 세상에서 무얼하다가 왔느냐고 물으시면 무엇이라고 답할 것입니까? 자기 한 몸 열심히 추스르고 처자식 먹여 살리고 남편 봉양하고 자식 기르다가 왔습니다.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까? 물론 잘 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동물들도 다 하는 것입니다. 거의 동물적인 삶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물으실 것입니다. 그건 다 좋은 일이고 그럼, 다른 사람을 위해 사회를 위해 한 일이 무엇인지를 한 번 말해 보아라!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더 나가면 영적 사역을 얼마나 감당했는지 물으실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 살리는 일, 영혼 살리는 일, 육신의 필요를 섬기는 일, 교회를 섬기는 일, 제자삼고 가르치는 양육의 일, 화목하게 하는 직책, 이런 일을 한 것이 있으면 하나라도 이야기 해 보렴!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인생은 잠깐입니다. 무엇으로 인생을 결산하기를 원하십니까? 무엇으로 믿음의 열매를 거둬들이겠습니까? 여러분의 신앙의 화살표는 평생동안 내 안으로만 내 안으로만 향해 있지는 않은지요? 우리의 신앙의 화살표를 이제는 바깥으로 향하도록 하자고요.

“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 (15절)

오늘은 직분자와 봉사자를 임명하는 시간입니다. 아울러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된 여러분에게 새로운 사역에의 도전을 하는 시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된 여러분!
생명 출산의 기쁨, 영적 양육의 즐거움, 사랑의 환희, 섬김의 감동을 맛보는 한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웃의 생명을 섬기고 사랑하는 한 해, 아주 작은 일에도 봉사하고 섬기는 기쁨을 간직하는 풍성한 한 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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